MYO-169: 심설 (深雪)
MYO-169: 심설 (深雪)의 관계
심설과 무월의 관계는 굳이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편안한 벗의 관계에 가깝다.
둘이 함께하는 시간에는 대개 거창한 목적이 없다. 따뜻한 차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소박한 다과를 곁들여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보드게임을 벌이는 정도다. 어느 쪽이 먼저 자리를 마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차가 식기 전에 한 번 더 따라주고, 상대의 접시가 비었으면 자연스럽게 다과를 밀어주는 정도의 사소한 배려가 둘 사이에서는 이미 익숙하다.
티파티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지는 않는다. 새로운 찻잎을 구했다며 맛을 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예상보다 단 과자를 두고 짧게 품평을 나누기도 한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찻잔만 기울이는 순간조차 어색하지 않다. 심설에게는 바로 그 점이 무월과 함께하는 시간의 가장 좋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조금 더 활기가 돈다. 사소한 수 하나를 두고 고민하거나, 상대의 의도를 읽으려 눈치를 살피고, 승패가 갈린 뒤에는 방금 전의 수를 다시 되짚어보기도 한다. 이기고 지는 것 자체보다는 그렇게 한 판을 함께 보내는 과정이 즐겁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냈을 시시한 농담이나 가벼운 승부욕조차 무월과 있을 때에는 좋은 유희가 된다.
심설은 무월을 자신이 편히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좋은 벗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심 무월도 자신을 그런 쿠킹비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사이도 아니고, 매번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유지되는 관계도 아니다. 만나면 차를 마시고, 시간이 남으면 놀이를 하고, 별일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마주쳤을 때도 마치 며칠 전의 다과회가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편안히 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
심설에게 무월은 그런 벗이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는 사람이라기보다, 한 잔의 차가 식어가는 시간을 기꺼이 함께 보내고 싶은 벗.
그래서 심설은 무월과의 관계에 굳이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좋은 차를 발견하면 한 번쯤 같이 마셔보고 싶고,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발견하면 다음에는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벗.
그 정도면 심설에게는 이미 충분히 좋은 벗이 아닐까?
함께 보드게임이나 차를 마시는 친구 그녀와 함께하면 하루가 가는줄 모르고 지나가버린다
하루가 이리 짮았던가
심설과 클레어는 함께 살아가는 관계이다.
둘은 성격만 놓고 보면 상당히 다르다.
클레어는 가만히 있는 법이 드물고, 심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아가 놀자고 말을 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대상에 심설도 예외는 아니다! 심설이 차를 마시고 있으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고, 보드게임 상자를 발견하면 언제 시작하느냐며 재촉하며, 별다른 용건이 없어도 그저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 심설의 주변을 맴돈다.
심설은 그런 클레어를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클레어의 부산스러움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는 것에 가깝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그 옆에서 클레어가 끊임없이 말을 걸고 엉뚱한 행동을 벌이는 것 역시 심설에게는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혼자만의 평온과 누군가와 함께하는 소란을 굳이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셈이다.
클레어가 “ 놀아? 놀아~. ” 하고 다가오면 심설은 대개 순순히 상대해 준다.
때로는 “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 하고 자신의 일을 마무리한 뒤 먼저 보드게임을 꺼내오기도 하고, 클레어가 제안한 놀이가 썩 내키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놀이를 제안한다. 거절한다고 해도 그것은 클레어 자체가 성가셔서가 아니라 단순히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외로… 심설은 생각보다 잘 놀아주는 편이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격식을 갖춘 태도를 보이지만, 본래 호전적인 성향이 있는 만큼 승부가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드게임을 시작했다가 클레어에게 한 번 지기라도 하면 눈에 띄게 진지해지고, 처음에는 한두 판만 하겠다던 그녀는 어느새 직접 다음 판을 준비하고 있게 된다. 클레어가 장난을 걸면 말로 타이르면서도 결국 그 장난에 어울려주며, 때로는 심설 쪽에서 먼저 승부나 놀이를 걸기도 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서 ‘ 클레어가 심설을 끌고 다닌다 ’고만 하기는 어렵다.
클레어가 먼저 불을 붙이는 경우가 많을 뿐, 한번 불이 붙은 뒤에는 심설도 꽤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클레어가 활동적인 놀이를 가져오는 사람이라면 심설은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한쪽이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취향에 발을 걸쳐놓은 관계에 가깝다.
클레어는 종종 하루 종일 밖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그날 발견한 것들을 하나둘 심설에게 가져다주기도 한다. 소다 지렁이나 예쁜 유리 조각, 어디서 주웠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육각볼트까지 종류는 제각각이다.
심설은 그것이 쓸모 있는 물건인지부터 따지지 않는다. 클레어가 자신을 떠올려 가져왔다는 사실 자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리고 심설 역시 클레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차를 마실 때에는 클레어의 몫까지 한 잔 더 준비하고, 새로 구한 보드게임이 있으면 가장 먼저 클레어를 불러 시험해 본다. 클레어가 차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더라도 옆에 앉아 떠드는 것까지 포함해 그것을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심설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취미를 즐기느냐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가깝다.
심설이 언제나 클레어를 돌보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심설 역시 덜렁거리는 면이 있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 금세 싫증 내는 존재이기에, 생활 속에서는 클레어와 함께 허술한 사고를 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설이 새로운 취미에 갑자기 빠져 온갖 준비물을 사들이면 클레어가 옆에서 신나게 거들고, 사흘 뒤 심설이 흥미를 잃으면 둘이 함께 남겨진 물건을 가지고 전혀 다른 놀이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클레어의 수영 습관 역시 심설에게는 골칫거리라기보다 익숙한 기행에 가깝다.
집 안에서 물이 충분히 고여 있는 곳을 발견한 클레어가 아무렇지 않게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심설은 한동안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이유부터 묻는다. 그것이 마실 음료나 음식이었다면 당연히 제지하겠지만, 클레어를 타박하기보다는 “ 다음부터는 들어가시기 전에 말씀해 주셔요. ” 정도로 끝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상당히 편안하다.
클레어는 심설에게 마음껏 다가갈 수 있고, 심설은 그런 접근을 굳이 밀어내지 않는다. 심설의 차분함이 클레어를 억누르는 것도 아니고, 클레어의 활기가 심설의 평온을 망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쪽의 조용함과 한쪽의 활발함이 한 공간 안에서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섞인다.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사이!
클레어와 심설은 동거 중이다.
기본적으로 클레어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이 일과이다. 일찍 일어나 나갔다가 저녁이 돼서야 들어오니 집이라는 것의 존재 의의가 다소 옅어지지만... 심설은 어느 날 밖을 떠돌아다니다가도 문득 생각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존재, 함께 있으면 무척 즐겁고 무언가 재밌는 것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그런 존재이다.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단순히 친구라고 여기고 있지만, 어렴풋이 이것이 또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관계 일지도 모른다고 느낄 때도 있다.
"오늘도 내일도 같이 놀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