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온 그날, 드디어 오늘이다.
[전투교육]을 받는 날.
[심설]은 아침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동이 트지도 않은 꼭두새벽부터 훈련장으로 갔다. 품속에는 그녀의 소중한 활, 릉상흑수와 함께인 채로.
ㆍㆍㆍ
얼마나 기다렸을까?
어둑하던 하늘이 차츰 옅어지고,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빛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심설은 훈련장 한쪽에 얌전히 서서 해돋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다기에는 지나치게 태평했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부터 배운다.
자신이 오랫동안 품에 안고 다니기만 했던 이 활을, 마침내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그 생각을 하며 릉상흑수의 활대를 손끝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던 때였다.
저벅, 저벅—
뒤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심설이 고개를 돌렸다.
발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교육 기간 내내 심설의 스승이 되어 그녀에게 전투에 대해 알려줄 [블러디]였다.
“ ……벌써 온 거냐? ”
블러디는 제법 놀란 눈치였다.
지금껏 많은 훈련생들을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일찍 훈련장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이는 손에 꼽혔기 때문이었을 테다. 정해진 시각에 늦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건만, 심설은 해가 뜨기도 전에 와 있었다.
심설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블러디를 향했다.
“ 당신이 저의 스승이시지요? 안녕하시옵니까, 소녀는 심…… ”
“ 통성명이나 하고 있을 시간 없다. ”
“ 아. ”
하던 말을 그대로 삼킨 심설은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 ……송구하옵니다. ”
그리고는 그대로 멈추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두 손으로 릉상흑수를 꼭 끌어안은 채 우물쭈물 서 있기만 했다.
블러디는 그런 심설을 잠시 내려다보다 한숨을 쉬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품으로 향했다.
“ 그게 네 무기인 거냐? ”
“ 아, 그렇사옵니다. 이 아이는 릉상…… ”
“ 알 것 없고. 다루는 방법은 알고 있나? ”
“ 그것이…….”
“ 모르는 눈치군. ”
“ ……그렇사와요. ”
심설의 대답이 조금 작아졌다.
그녀의 무기, 릉상흑수.
그녀가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리 수림에서 운명처럼, 혹은 정말 우연히 마주친 무기였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늘 품에 안고 다녔고, 손이 닿는 곳에 두었으며, 활대의 굴곡이나 표면의 감촉 정도라면 눈을 감고도 알아맞힐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단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활을 쏜다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는 안다,
활을 세우고,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날린다—
아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블러디가 관자놀이를 한 번 눌렀다.
“ 알고 있는 데까지 해봐. 자세 잡고. ”
“ 예…! ”
심설은 곧장 품에 안고 있던 릉상흑수를 꺼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활을 쏘는 자세를 취했다.
두 발을 가지런히 붙이고,
몸은 과녁을 향해 정면으로 세우며,
왼손으로는 활을 꽉 움켜쥐고,
그리고 오른손은 시위를 잡아 어설프게 가슴께로 가져왔다.
팔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고, 어깨는 축 쳐진 귀 끝 가까이까지 올라가 있었다.
손목은 안쪽으로 꺾였으며, 팔꿈치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듯 애매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 자세 그대로 심설은 블러디를 바라봤다.
“ ……이리 하면 되는 것이옵니까? ”
“ 아니.”
즉답이었다.
“ 아? ”
“ 전부 틀렸다.”
심설의 눈이 조금 커졌다.
“ ……전, 전 말씀이시옵니까? ”
“ 그래.”
“ 진정 하나도 맞지 않사옵니까? ”
블러디는 잠시 심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 활을 앞에 들고 있다는 것 정도.”
“ 아… 그것은 다행이옵니다. ”
“ 다행 아니야.”
심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블러디는 짧게 숨을 내쉰 뒤 손을 내밀었다.
“ 일단 내려.”
심설이 활을 내렸다.
“ 지금부터 하나씩 한다. 네 멋대로 다음으로 넘어가지 마.”
“ 알겠사옵니다. ”
“ 발부터. ”
블러디가 심설의 발을 내려다봤다.
“ 왜 그렇게 붙이고 있어?”
“ ……붙이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요? ”
“ 그 상태에서는 누가 어깨만 밀어도 넘어진다.”
블러디가 발 끝으로 바닥을 툭 두드렸다.
“ 어깨너비 정도로는 벌려.”
심설이 조심스럽게 발을 벌렸다.
한 뼘 정도…
“ 더.”
조금 더 벌렸다.
“ 거기. ”
심설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 이 정도면… 되는 것이옵니까? ”
“ 기본은. ”
블러디는 이어서 과녁을 손으로 가리켰다.
“ 그리고 몸은 과녁 정면으로 두지 마.”
“ 어째서인 것이옵니까? ”
“ 활을 당길 공간이 안 나와.”
블러디는 손가락으로 심설의 어깨선을 가리켰다.
“ 몸을 옆으로 돌려. 활 잡는 쪽 어깨가 과녁을 보게.”
심설이 몸을 돌렸다.
휙—
…문제는 너무 많이 돌았다는 것이다.
거의 등을 보일 정도였다.
“ 반대.”
“ 아……! ”
다시 돌았다.
문제는, 이번에는 너무 적었다는 것이었다.
“ 조금 더. ”
심설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 더. "
또 조금.
“ 거기, 그래. ”
심설은 그대로 굳었다.
“ 움직이면… 아니 되옵니까? ”
“ 그렇게 굳으라는 뜻은 아니고. ”
“ 어렵사옵니다……. ”
“ 아직 시작도 안 했다. ”
블러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심설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블러디는 그녀의 자세를 다시 확인했다.
“ 무릎은 잠그지 마. ”
“ 잠그다니요? ”
“ 쭉 펴서 뻣뻣하게 만들지 말라고. ”
심설이 제 무릎을 내려다봤다.
과연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 힘 빼. ”
“ 이리, 말씀이시옵니까? ”
살짝 굽혔다.
“ 그렇게 앉으라는 게 아니다. ”
“ 아… ”
다시 폈다.
“ 너무 폈고. ”
심설은 눈을 깜빡였다.
“ ……그 중간은 과연 어디에 있사옵니까? 존, 존재는 하는 것이옵니까…? ”
블러디가 잠깐 침묵했다.
“ 자연스럽게 서. ”
“ 자연스럽게……. ”
심설은 제법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섰다.
블러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거.”
“ 처음부터 그리 말씀해 주셨으면……. ”
“ 전투하다 자연스럽게 서라고 하면 못 알아먹는 놈들이 더 많아. ”
“ 그렇사옵니까? ”
블러디는 다시 릉상흑수를 가리켰다.
“ 이제 들어. ”
심설이 활을 들었다.
“ 손. ”
“ 예? ”
“ 활 쥔 손. ”
심설은 왼손을 내려다봤다.
활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꽉 움켜쥐고 있었다.
블러디가 곧바로 말했다.
“ 그렇게 잡지 마.”
“ 혹여… 놓칠까 염려되옵니다. ”
“ 오히려 그렇게 잡으면 틀어진다. ”
블러디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 손바닥 한가운데로 눌러 잡는 게 아니야. 엄지와 검지 사이, 이쪽. ”
그가 자신의 손에서 엄지 아래쪽의 두툼한 부분을 가리켰다.
“ 활 손잡이가 여기에 걸린다고 생각해.”
심설은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손 위치를 조금 바꿨다.
“ 이리? ”
“ 손목 세우고. ”
심설의 손목이 안쪽으로 크게 꺾여 있었다.
블러디가 손가락으로 그 방향을 가리켰다.
“ 꺾지 마. 일자로. ”
심설이 손목을 펴려고 했다.
반대로 너무 젖혔다.
“ 반대.”
“ ……손목이라는 것이 이리 어려운 것이었사옵니까?”
“ 평소엔 쉬운데 네가 활을 잡으니까 어려워지는 것 같군. ”
심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블러디는 계속했다.
“ 손가락도 다 감지 마.”
“ 활을 놓치지 않사옵니까…? ”
“ 안 놓쳐. ”
“ 정말이옵니까? ”
“ 네가 제대로 밀고만 있으면. ”
심설은 반신반의하면서 손가락의 힘을 조금 풀었다.
블러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활을 쥐는 게 아니라 받치고 미는 거라고 생각해.”
“ 밀다…….”
“ 손은 힘을 전달하는 데 쓰는 거지, 활을 으스러뜨리는 데 쓰는 게 아니야. ”
심설은 그 말을 듣고 힘을 더 풀었다.
“ 그러면 이 정도이옵니까?”
“ 좀 낫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심설의 눈이 살짝 밝아졌다.
그러나… 블러디는 곧바로 다음을 지적했다.
“ 팔꿈치.”
“ 또 틀렸사옵니까?”
“ 네 팔꿈치가 시위 길 한가운데 있어.”
심설은 제 왼팔을 내려다봤다.
“ 이대로 당기면 시위가 팔 안쪽을 친다.”
“ ……아픕니까? ”
“ 맞아보면 알겠지.”
심설의 표정이 굳었다.
블러디가 한숨을 쉬었다.
“ 맞아보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다. 팔꿈치를 바깥으로 살짝 돌려.”
심설이 팔 전체를 과하게 돌렸다.
“ 너무.”
조금 되돌렸다.
“ 거기.”
“ 여기이옵니까?”
“ 그래.”
“ 움직이지 않도록 기억하겠사옵니다.”
“ 위치를 외우지 말고 느낌을 기억해. 몸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니까. ”
심설은 그 말을 듣고 몇 번 가볍게 팔을 내렸다 들었다.
같은 위치를 찾으려는 듯했다.
블러디는 그 모습을 보고는 별말 없이 기다렸다.
몇 번 반복한 뒤 심설이 다시 활을 들어 올렸다.
“ 이리…?”
“ 전보단 낫다.”
“ 다행이옵니다. ”
“ 아직 반도 안 했는데? ”
심설의 눈빛이 잠깐 흐려졌다.
블러디는 개의치 않고 오른손을 가리켰다.
“ 이제 시위 잡는 손.”
심설은 기다렸다는 듯 오른손으로 시위를 꽉 움켜쥐었다.
“ 아니. ”
“ ……또, 말씀이시옵니까?”
“ 시위를 주먹으로 잡는 놈은 처음 본다.”
“ 놓칠까 염려되어…….”
“ 그 말 좀 그만해라.”
심설은 조용히 손을 폈다.
블러디가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 세 손가락.”
“ 그래. 시위를 손가락 끝으로 집는 게 아니라 첫 마디 쪽에 걸어.”
심설이 천천히 따라 했다.
“ 엄지는 힘 빼고.”
“ 엄지도 쓰지 않사옵니까?”
“ 지금은 안 써.”
“ 소지는…?”
“ 그것도.”
심설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시위에 걸었다.
“ 이상하옵니다.”
“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 떨어질 것 같사온데…….”
“ 안 떨어져.”
“ 정말…”
“ 또 그 말하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
심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블러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 팔을 들어.”
심설이 활과 시위를 동시에 올렸다.
곧바로 어깨도 따라 올라갔다.
“ 어깨 내려.”
심설이 어깨를 내렸다.
너무 많이 힘을 빼 활까지 내려갔다.
“ 활은 내리지 말고.”
“ 별개로 움직여야 하옵니까?”
“ 당연하지.”
“ 몸에는 어려운 일이옵니다.”
“ 익혀.”
심설은 다시 활을 들었다.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어깨를 아래로 눌렀다.
“ 그 상태에서 당겨.”
“ 어디까지요? ”
“ 얼굴까지.”
심설이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팔꿈치가 옆으로 퍼졌다.
“ 팔꿈치 뒤로.”
심설이 고쳤다.
“ 어깨 힘 빼.”
또 고쳤다.
“ 손목 꺾지 마.”
다시 고쳤다.
“ 활 잡는 손 힘 풀고.”
다시.
“ 몸 뒤로 넘어가지 마.”
심설이 기울어진 상체를 세웠다.
한 번 당기는 것뿐인데 지적이 끝없이 이어졌다.
시위가 절반쯤 당겨졌을 즈음 심설의 팔이 미세하게 떨렸다.
블러디가 말했다.
“ 멈춰.”
심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 지금 어디 힘들기라도 하나?”
“ …실은, 팔이옵니다.”
“ 어느 팔.”
심설은 잠시 고민했다.
“ ……둘 다이옵니다.”
“ 활 잡는 팔?”
“ 예.”
“ 힘 너무 주고 있어서 그래.”
심설은 왼손의 힘을 조금 풀었다.
“ 당기는 팔은?”
“ 여기도… 역시 아프옵니다.”
“ 팔로만 당기니까.”
“ 팔로 당기는 것이 아니옵니까?”
심설이 진심으로 의아한 얼굴을 했다.
블러디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 팔만 쓰는 게 아니야.”
그는 자신의 등을 가리켰다.
“ 어깨랑 등까지 같이 써. 당기는 손을 뒤로 가져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양쪽 어깨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벌린다고 생각해.”
심설이 멍하니 바라봤다.
“ ……어깨를 벌린다.”
“ 그래.”
그녀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왼손은 과녁 쪽으로 밀고,
오른손은 시위를 잡고,
양쪽 어깨가 서로 멀어진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당긴다.
적어도 아까보다는 움직임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블러디의 눈이 가늘어졌다.
“ 그래. 그쪽이 낫다.”
“ 정말이옵니까?”
“ 말시키지 말고 계속.”
“ 예.”
심설은 입을 다물고 시위를 조금 더 당겼다.
오른손이 뺨 근처까지 왔다.
“ 거기서 멈춰.”
그녀가 멈췄다.
“ 매번 당기는 위치가 달라지면 화살도 매번 다른 데로 간다.”
“ 그렇겠사옵니다.”
“ 얼굴에 기준점을 하나 만들어. 손이 언제나 같은 데 닿게.”
블러디가 자신의 턱선을 가리켰다.
“ 턱 아래든, 입가든. 네 활이랑 네 몸에 맞는 위치는 나중에 잡는다. 지금은 같은 곳에 당기는 습관부터.”
심설은 손을 조금 옮겼다.
“ 이곳은 어떠하옵니까?”
“ 너무 위.”
조금 내렸다.
“ 거기쯤.”
“ 기억하겠사옵니다.”
“ 그리고 얼굴을 시위 쪽으로 가져가지 마.”
이미 심설의 목이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 활에 네가 맞추는 게 아니라 네 자세 안으로 활을 가져오는 거다.”
심설은 고개를 바로 세웠다.
“ 이리?”
“ 그래.”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처음으로 자세 전체가 그럭저럭 활을 당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두 발은 안정적으로 벌어져 있었고,
몸은 과녁을 향해 옆으로 서 있었으며,
활을 쥔 손에는 지나친 힘이 빠져 있었다.
팔꿈치는 시위가 지나갈 길을 피해 있었고,
당기는 손은 일정한 위치에 와 있었다.
물론 여전히 서툴렀지만 적어도 처음처럼 활과 씨름하는 꼴은 아니었다.
블러디는 심설의 자세를 한 번 훑어봤다.
“ 그 상태 기억해.”
“ 예.”
“ 내려.”
심설이 활을 내렸다.
“ 다시.”
그녀가 다시 들었다.
“ 발.”
심설이 발 간격을 고쳤다.
“ 몸.”
옆으로 섰다.
“ 손.”
활을 가볍게 받쳤다.
“ 팔꿈치.”
돌렸다.
“ 시위.”
세 손가락을 걸었다.
“ 어깨.”
내렸다.
“ 당겨.”
천천히.
조금씩.
아까보다 덜 흔들렸다.
“ 멈춰.”
심설이 멈췄다.
“ 다시 내려.”
내렸다.
“ 또.”
심설은 군말 없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때마다 블러디의 지적은 조금씩 줄었다.
처음에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전부 손봐야 했으나, 몇 번이 지나자 손목이나 어깨 정도만 짧게 짚으면 되었다.
물론 아직 한참 멀었다.
심지어 화살조차 걸지 않았다.
과녁을 맞히기는커녕 지금은 제대로 서서 활을 당기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나, 블러디는 서두르지 않았다.
“ 다시.”
심설이 활을 들었다.
“ 힘 빼.”
심설이 숨을 내쉬며 힘을 풀었다.
“ 자세는 힘으로 버티는 게 아니다. 뼈랑 관절이 제자리에 있어야 오래 간다.”
“ 예.”
“ 네가 지금부터 잘못된 자세로 백 번 쏘면 그게 습관이 된다.”
심설은 말없이 들었다.
“ 그러니까 오늘 화살 한 발도 못 쏴도 상관없어.”
그 말에는 심설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 한 발도 말씀이시옵니까?”
“ 왜.”
“ 소녀는 오늘 적어도 한 번쯤은 쏘아볼 줄 알았사옵니다.”
“ 지금 네 수준에선 쏘는 것보다 안 쏘는 게 교육이다.”
“ ……그렇사옵니까.”
조금 아쉬운 듯했으나 반박하지 않았다.
블러디가 턱짓했다.
“ 앞 봐.”
심설은 다시 정면을 향했다.
“ 네가 지금 해야 할 건 하나다.”
“ 무엇이옵니까?”
“ 활을 들었을 때 생각하지 않아도 이 자세가 나오게 만드는 것.”
심설이 릉상흑수를 바라봤다.
“ 릉상흑수를 제대로 잡는 것부터.”
“ 그래.”
심설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발을 벌리고,
몸을 돌리고,
활을 받쳐 들고,
손목을 세우고,
팔꿈치를 돌리고,
세 손가락으로 시위를 걸었다.
그리고 어깨를 내렸다.
활을 앞으로 밀며, 시위를 뒤로 당겼다.
블러디는 옆에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짧게 말했다.
“ 손목.”
심설이 즉시 고쳤다.
“ 어깨.”
고쳤다.
“ 턱.”
고쳤다.
“ 그래.”
심설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팔이 조금 떨리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블러디가 말했다.
“ 그게 시작이다.”
그 말에 심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에 걸린 시위와 제 몸의 위치를 하나하나 기억하려는 듯 눈앞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은 화살도 없고,
과녁을 맞힐 일도 없고,
누군가와 싸울 일도 없었다.
오늘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저 하나…
오랫동안 품에 안고만 있었던 릉상흑수를―
처음으로 제대로 잡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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