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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2일 00:35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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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2일 01:12 (3주 전) / 아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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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맺어 준 인연인 것 같은데.” 요호는 신당 앞에 앉은 채, 백곰의 뒤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백곰이 고개를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검은 여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요호의 곁을 지키던 여우와는 분명 다른 녀석이었다. 새까만 털 사이로 두 눈만 반짝였다. “그 녀석이랑 슈가렐이나 한 번 돌아보는 건 어떻노?” 백곰은 대답하지 않고 여우를 바라보았다. 여우 역시 백곰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백곰이 산길 아래로 몸을 돌렸다. 사박. 뒤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사박, 사박. 백곰이 멈추자 소리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 여우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 있었다. “……마음대로 해.” 백곰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의 이상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딱히 함께 걷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백곰이 앞서 걸으면 검은 여우가 멀찍이 따라왔다. 백곰이 잠시 멈추면 녀석도 멈췄다. 길가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냄새를 발견하면 잠시 다른 곳으로 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이면 다시 백곰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백곰은 몇 번인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굳이 쫓아내지는 않았다. 신이 맺어 준 인연. 요호는 그렇게 말했지만, 백곰에게는 아직 그저 낯선 검은 여우 한 마리일 뿐이었다. 둘이 걷다 도착한 곳은 사람들이 오가는 슈가렐의 시장이었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달콤한 냄새와 수많은 목소리, 가지런히 늘어선 물건들 사이를 지나자 검은 여우의 귀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곰은 그런 여우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 조용히 따라오던 녀석이 시장에 들어선 뒤부터 유난히 부산스러웠다. “딴 데 가지 마.”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여우의 귀가 쫑긋했다. 그리고 잠시 뒤. 백곰이 한눈을 판 사이 검은 꼬리가 사람들 사이로 쏙 사라졌다. “…….” 백곰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길한 예감은 길지 않았다. 와르르!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곰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하자, 시장 한쪽에 있던 물건 몇 개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검은 여우가 있었다. 어디서 물고 왔는지 작은 장식 하나를 입에 문 채였다. “너.” 여우의 귀가 움찔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안젤리카와 앤도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곰이 여우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여우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내려놔.” 여우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거.” 꼬리가 살랑거렸다. 백곰이 다시 다가가자 여우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거기 서.”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검은 여우는 사람들 사이를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그 뒤로 백곰이 따라붙었다. 여우는 좌판 아래를 지나고, 백곰은 돌아갔다. 여우가 사람들의 발 사이를 빠져나가면 백곰은 멈춰 길이 비기를 기다려야 했다. 작은 몸집은 이럴 때만큼은 아주 훌륭한 무기였다. “잡히면 가만 안 둔다.” 물론 검은 여우는 조금도 겁먹지 않은 듯했다. 한참을 쫓은 끝에 녀석이 막다른 곳에 멈춰 섰다. 백곰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여우는 입에 물고 있던 장식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이제야.” 백곰이 장식을 집어 들었다. 돌려놓아야 할 물건도 있었고, 시장에서 벌어진 소동도 수습해야 했다. 여우는 그 옆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백곰은 한동안 여우를 내려다보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신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것까지 보내주나.” 대답은 없었다. 결국 백곰은 떨어진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시장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을 정리했다. 안젤리카와 앤도 근처에서 함께 흩어진 물건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크게 망가진 것은 없어 보였다. 소동이 끝난 뒤 백곰은 검은 여우를 데리고 시장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데리고 나왔다기보다는, 이번에도 여우가 알아서 뒤를 따라왔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두고 간다.” 여우는 모르는 척 길가를 바라보았다. 백곰은 더 말하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오던 발소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박. 사박. 조금 느렸다. 백곰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검은 여우는 멈춰 선 채 한쪽 앞발을 살짝 들고 있었다. “……뭐냐.” 백곰이 가까이 다가가자 여우는 슬며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백곰이 몸을 낮췄다. 여우의 앞발을 살펴보니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시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어디에 긁힌 모양이었다. 심한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대로 계속 걷기에는 불편해 보였다. 백곰이 손을 내밀자 여우가 몸을 움찔했다. “가만있어.” 여우는 백곰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백곰은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한동안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바람이 지나갔다. 조금 뒤 검은 여우가 조심스럽게 앞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백곰은 그제야 손을 움직였다. 자신의 손에 감겨 있던 붕대 끝을 조금 풀었다. 하얀 붕대가 손끝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백곰은 필요한 만큼만 잘라내 여우의 발에 조심스럽게 감았다. “아프면 가만히 있든가.” 검은 여우는 이상할 정도로 얌전했다. 조금 전 시장에서는 붙잡히기 싫어 그렇게 날뛰더니, 지금은 백곰의 손길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붕대를 다 감은 백곰이 손을 놓았다. 여우는 붕대가 둘러진 앞발을 몇 번 들었다 내렸다 했다. 그러더니 백곰의 손을 킁킁거렸다. “끝났어.” 백곰이 일어나자 여우도 따라 일어났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신당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검은 여우는 백곰에게서 꽤 떨어진 곳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박. 발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백곰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여우가 어느새 자신의 옆을 걷고 있었다. 앞발에는 조금 전 백곰이 감아 준 하얀 붕대가 작게 매여 있었다. 백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우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중 갈림길 하나가 나타났다. 백곰이 익숙하게 한쪽 길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검은 여우가 갑자기 앞으로 뛰어나왔다. “왜.” 여우는 길 한가운데 서서 백곰을 바라보았다. 백곰이 옆으로 비켜가려 하자 이번에는 몸을 옮겨 다시 길을 막았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검은 여우는 꼬리를 세우고 바닥을 킁킁거리더니 낮게 몸을 숙였다. 백곰이 앞쪽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길의 겉모습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가장자리의 흙이 아래쪽부터 무너져 있었다. 잘못 디디면 한꺼번에 흙이 쓸려 내려갈지도 몰랐다. 백곰은 무너진 길을 바라보다 검은 여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우는 여전히 그 앞을 막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았다.” 백곰은 반대쪽 길로 몸을 돌렸다. 몇 걸음 걷다 문득 뒤를 바라보았다. 검은 여우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백곰이 먼저 말했다. “네가 앞장서.” 검은 귀가 쫑긋 올라갔다. 곧 검은 여우가 백곰의 앞으로 총총 뛰어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를 따라오던 녀석이었다. 이제는 몇 걸음 앞에서 길을 살피다가, 백곰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듯 가끔 뒤를 돌아보았다. 백곰 역시 더 이상 녀석이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둘은 잠시 길가에 멈춰 쉬었다. 검은 여우는 많이 돌아다닌 탓인지 백곰 가까이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하얀 붕대가 감긴 작은 앞발이 까만 꼬리 사이로 살짝 보였다. 백곰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신당에서 들었던 요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신이 맺어 준 인연. 정말 그럴까. 이 여우가 이름조차 모르는 신이 보내 준 것인지, 그저 우연히 신당 뒤를 돌아다니다 자신을 따라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백곰에게 답을 알려주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신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대신 하루가 끝나갈 무렵, 아침에는 없었던 검은 여우 한 마리가 자신의 곁에 있었다. 백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여우도 고개를 들었다. “가자.” 짧은 한마디였다. 여우는 몸을 일으켜 백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둘은 다시 함께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어느 쪽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보상

캐릭터

MYO-050: 백곰 썸네일

MYO-050: 백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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