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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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이나 좋아했던 밝고 따뜻한 햇살은 어디로 갔는가. 그토록이나 소중하다고 느낀 부드럽게 부는 바람 또한 어디로 갔는가. 사각거리면서 밟히는 흙의 감촉은 여전하여도 어째서 이렇게나 마음이 불안해질까.
귀를 아래로 젖혔음에도 주변에서 막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의 거짓말소리. 있지도 않은 거대한 호랑이 몬스터가 살아가고, 이미 떠나간 이가 누군가의 곁에 남아있으며, 존재하지 않은 꽃의 이야기를 그들이 속삭이듯이 말한다. 그 속에서 불길처럼 번지는 모두의 의심된 눈빛.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어느 순간부터 떠오른 붉고 음산한 해가 본래부터 이것이 스스로의 역할이었던 것처럼 슈가렐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제 빛으로 품어주고 있다. 오늘만큼은 사랑해 왔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 자신마저 의심스러워지는 날이다.
 
처음 보는 여우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이 문제였을까? 겁도 없이 그렇게나 어두운 숲에 발을 들인 것이 문제였을까. 수상하게 생긴 이에게서 더 수상해 보이는 물건을 받아버린 것이 문제였을까...
카페라테는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불안한 마음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인지 그저 애꿎은 책만 강하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일단 이 숲에서 벗어나 모카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무엇이 됐든 지금은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장님께 지금까지 보고 받아온 것을 보여준다면 이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리 다재다능한 사장님이라도 이런 것까지는 도와줄 수 없는 노릇일까. 애당초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생각해서 그저 애들 장난 취급으로 넘겨버릴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도 그럴게 거짓말을 하면 요상한 물건이 튀어나오는 책이라니. 이런 이야기는 당장 찾아봐도 동화책 같은 곳이 아니라면 접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저 이 상황 자체가 거짓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이미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지 않았는가.
실없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무섭다, 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지금을 부정하려는 것이.
 
이런저런 생각을 지니고 속으로 되새기며 걸음을 옮기니 어두운 숲은 점점 카페라테와 멀어졌지만 어두운 하늘만큼은 아직까지도 카페라테를, 슈가렐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덜컥 겁이 나서 무언가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어두운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무엇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는지, 도망가도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건 전혀 생각해두지 않은 채로 제 걸음만 재촉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도망이라는 것을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 있었을까.
 
깊은 생각으로 걸음이 점점 느려졌고, 문득 제 품에 있던 책이 생각나 조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쩔 줄 모를 마음에 강하게 안아버린 책 한 권. 안은 힘이 어찌나 강했던 건지, 책의 옆면이 닿고 있던 두 팔에 그에 맞는 자국이 남은 것 같은 감각이 뒤늦게 전해져 왔다. 셔츠 때문에 가려져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감각만큼은 확실했다.
 
책을 펼쳐보았다. 아까도 보았던 백지. 아무런 글도 없이 오직 백지만을 품고 있는 책. 그러나 이 책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하얗던 종이는 검게 물들며 그 위로는 붉은빛의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아까 만났던 검은색의 쿠킹비는 그것을 '공물' 이라고 불렀다.
 
'공물... 그렇게 좋은 울림을 갖고 있는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만 드네.'
 
공물을 총 여섯 개 모아 오면 아까 만난 여우가 공물을 쓸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해 준다고 하였다. 그러면 거짓말을 총 여섯 번 해야 하는 셈이다. 살면서 그렇게나 많은 거짓말을 하루 안에 해본 적이 있었던가 싶어진다. 애초에 거짓말이라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남들 앞에서는 어색하더라도 진실만을 말해왔던 생애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런 책 같은 거, 그런 말 같은 거 전부 무시하고 어제와 같이, 평소와 같이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런 걸 모두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일까. 거짓말을 빌미 삼아 한 가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거짓말을 품고 공물을 뱉는 책. 그렇다면 이 책은 진실에는 반응하지 않는 셈이다. 지금부터 소리 내어 말할 것이 진실이라면 이 책은 영원토록 백지로 지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건 안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 나는 ■■■를.."
 
책은 말을 삼켰다. 백지는 검게 물들어가고, 그 위로 붉은빛의 글씨가 새겨진다.
그렇구나. 나는, 그랬던 거구나.
한국거대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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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자 한국거대까마귀 / 프롬프트 [일식] 여우의 거짓말
제출일: 1개월 전최종 수정일: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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